검색

부활

오랜기간의 사순을 지나 바야흐로 부활을 맞았다. 코로나 방역조치로 부활 대축일 역시 아주 조심스레 다가왔다. 시나브로 부활을 맞았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겠다. 그럼에도 기쁨이란 함지 속에 감추어둘 수 없는 것인지라 원목실에서는 병동 환우들에게 조촐한 이벤트로 피자를 주문했다.

병원 식사가 맛이 좋다 하더라도 환우들의 만족스러움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병동에는 분명 작은 행복이 주어졌을 것이다. 환우들 덕분에 간만에 피자를 함께 맛보았다.


설렘과 기쁨을 주는 부활... 한자로는 이렇게 적는다. 復!

언젠가 이 단어를 '복활'이라는 음절로 읽었다가 웃어버린 기억이 있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듣고서는 복활이라고 발음을 하다니, 스스로를 두고도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의미를 생각하면 [다시 "부"]보다는 [회복할 "복"]이라고 읽는 것도 아주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본래 모습인 (영원한)'삶'을 회복하는 과정과 결과가 부활이기 때문이다.

부활초를 밝힌지 두 번째 주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병원의 환우들에게도 '복활'의 시간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나름의 이유로 잠시 쉬어가는 삶의 한 구비를 넘어가고 있는 환우들이, 본래 지녔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추억해내고는 기쁨으로 부활하기를 바란다.


그 날에는 피자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마땅한 축하와 응원을 전할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이 현실이 되는 그 날을 그려본다.



<성안드레아병원, 류지인 야고보 신부>

조회 29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20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