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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지기

4월 21일 업데이트됨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고, 현실과 타협하고, 다시 세우고 포기하고... 다시, 또 다시 계획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는 의욕이나 욕심이 앞서면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 방학 계획표를 빼곡히 채웠던 동그라미 시간표는 대부분 계획으로 머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계획을 줄이면 목표 달성이 용이해지지만 초라한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욕심이 마음껏 나래를 펼치는 광경을 대부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처음에 계획한 바를 오랜시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을 잡고 있던 끈을 놓고 수도회에 입회하던 날, 친한 친구들이 제가 응답한 삶의 기간을 놓고 내기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한 달, 또 누구는 일 년, 제일 후하게 점수를 주었던 친구조차도 삼 년 이상의 수도생활을 바라보기는 어렵다는 점궤를 내놓았답니다. 그러했던 수도자로서의 삶의 역사가 은경축에 가까워오고 있으니 확신을 담은 삶의 한 가지 이야기는 소중하게 이어갈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달려온 한 길을 되돌아보니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같은 곳에서 넘어지기도 수십번 반복하면서 이 길이 정녕 맞는 방향인지 의심한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한눈을 팔고 샛길로 들어섰다가 수고스럽게 되돌아 나오기도 하고, 꾀를 부려 지름길을 택했다가 더 큰 고생을 맛본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 갈팡질팡 발 자취가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반듯하게 걸어온 발자국보다는 오히려 정감이 있고, 군더더기 없이 일자로 곧게 뻗은 흔적보다는 인간미가 넘치게 보입니다.


우리 성안드레아병원에도 한 길을 걸어온 선생님이 계십니다. 근속 20년!!


도전적인 병원 근무 속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켜오신지 20년이 되셨습니다. 코로나를 비롯한 어려운 사정탓에 축하를 담은 기념행사를 열 수 없게 되자, 현장의 동료 의료진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근속 20주년 축하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느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없이 스스로가 선택한 한 길을 걸어왔지만, 어느 누군가가 그 의미를 알아봐주고 기념해줄 때에 우리 마음에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물결치고. 삶의 의미가 뚜렷하게 확인되곤 합니다. "김옥화 선생님, 축하합니다!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일도 삶은 소리 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런 보답 없는 삶의 침묵이 무의미로 연결되기도 할 것이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에, 가만히 다가가 조용한 삶의 의미를 깨우는 누군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서 꼭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참 고생했어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당신이 곁에 있었기에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아~! 또 새로운 하루가 다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성안드레아병원, 류지인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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