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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흔적, 역사의 단편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나면 '과연 오늘 하루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허무해질 때가 있다. 분명 시간에 쫓기듯 맡겨진 일정을 다하고 딴청을 피우는 일 없이 바지런하게 하루를 보냈는데도 정작 체감할 수 있는 결과는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바로 이 때가 깨어있어야할 시간이 아닌가?"


성취 결과가 마뜩잖아도, 손에 잡히는 결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코 시간은 무의미하게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하여도 몸과 마음에는 여유를 선물한 것이니 시간을 의미있게 보낸 것이고, 열심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했다면 분명 그 다음 알 수 없는 무엇에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설령 집중했던 사업이 무산되었다고 하더라도 맥빠진 영혼을 가로채는 허무함만 조심하면 오랜만에 찾아온 잠깐의 여유도 바라볼 수 있다. 예상치 못했던 악재에 혼이 달아날지라도... 원치 않던 결과와 나를 동일시 하는 우매함을 경계할 수 있다면 나의 소중함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낼 수 있다.



우리 병원 어느 문고리에 나의 시선을 모아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길이 이곳을 거쳐갔는지 문틀과 문 고리의 색깔이 확연하게 다르다. 정신없이 드나들며 문을 여닫았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보람과 즐거움으로 이 공간을 드나든 이의 손길도 지나갔을 것이며, 또 어느 누군가는 낙심한 마음의 힘 없는 손길로 스치듯 문고리를 당겼을 것이고, '쾅' 소리와 함께 화가난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 손때 묻은 얼룩 위에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모여 시간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낡았다고 감히 이야기하지 말아라. 지워야할 더러운 얼룩이라고는 더욱이 폄하하지 말거라! 기쁘고 슬프고 보람되고 허무했던 모든 삶의 흔적이 빠짐없이 담겨 역사를 이루고 있으니..."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소중한 단편들이다.


오늘 이 문 손잡이를 잡을 때에는 잠시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숙연함으로 머물고자 한다. 오늘에 앞서 다녀간 많은 선배들의 발자취와 이 뒤에 올 누군가의 손길을 축복하는 자세로, 오늘 만나는 한명 한명의 삶이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진리가 세상을 울리는 힘있는 목소리가 되기를 소망하고 또 희망한다.



<성안드레아병원 홍보실장 류지인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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